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興業
흥업면종합정비사업은 2011년부터 70억 원을 투
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, 흥업리 잔개미에 살던 노 씨는 돼지와 금수탉이 노니는 꿈을 꾸
흥업면의 전신인 금물산면에 사제면(沙堤面)·판
우 리 마 을 이 야 기
입해 대학문화와 농촌문화가 어우러진 녹색흥업 건설
었다. 이를 예사롭지 않게 여겨 꿈에서 돼지와 금수탉이 놀던 자리를 파보았더니 금광석이
제면(板梯面)의 일부 마을이 병합, 정비를 거치며 만
을 목표로 추진돼 왔습니다. 대학은 지역의 우수하고
노다지로 나왔더라는 것이다. 금은 마치 이불 모양으로 깔려 있었다고 한다. 소식을 듣고 금
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흥업이다. 금물산면과 사제면
중요한 자원인데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
을 따러 달려온 사람들로 흥업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.
은 유서가 깊은 고을로 ‘광여도’·‘여지도’·‘원주목지도’
이 현실이었습니다. 그 자원을 활용해 대학생과 주민
등 조선시대에 제작된 각종 지도에서도 그 이름을 확
과의 문화 교류, 대학과 농촌문화의 교류 마당 등 마을
마을 곳곳에는 금을 캐던 굴이, 개울가에는 금방앗간이 있었다. 그러나 차츰 세월이 흘
인할 수 있다. 특히 사제면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이름
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.
러 금광은 폐쇄되었고 굴은 메워지게 되었다. 전쟁이 끝난 후로도 많은 광부들이 금을 찾아
이 등장하며 금물산면으로 병합되기 전까지 사제1리
그 결과 대학과 농촌이 함께하는 다양한 축제와 함께
이곳에 다녀가기도 했지만 다시 금광이 개발되는 일은 없었다. 어떤 곳은 대학교가 들어오
에 사제면사무소가 소재했다고 한다. 판제면은 1750년
‘학촌마을’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기도 했습
며 옛 모습이 사라졌고, 어떤 곳에는 수목이 우거져 더 이상 그 자리를 찾기조차 쉽지 않다.
대 이미 있었던 행정구역이었다.
니다. 그리고 이제 막 새 세상을 만난 ‘금 따는 마을 흥
1914년 행정구역을 통·폐합하며 사제면의 분7리·
업이야기’가 과거와 현재, 미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
그러나 아직 흥업 땅 아래 깊숙한 어딘가에는 금이 매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. 이제는
분8리와 판제면의 본3리가 금물산면에 병합되었고,
을 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.
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한때 사람들이 꿈을 캐던 곳, 금 바위 위에 남은 우리 마을에 앞으
대안리·매지리·흥업리·무실리·사제리의 5개 법정 리
로 많은 발전이 있으리라 싶다.
로 개편되며 현재의 기틀이 잡혔다. 곧이어 1916년에
는 면소재지를 자감촌으로 이동하면서 금물산면이라
는 이름 대신 흥대동과 울업동에서 각각 한 글자씩을
따온 흥업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. 즉 흥업
이라는 명칭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이름으로, 이제 갓
100년이 된 것이다.
흥업면소재지종합정비사업추진위원회
제 호 장병식
디자인 김수진